토요일 아침,
아이팟에서 재생된 음원은 80년대 말 생산되었던 디지털앰프를 통해 증폭되어 카라얀이 즐겨 사용했다던 40년가량 된 골동품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와 방안에 깔린다.
직접 블랜딩한 커피, 굵직하게 갈아 프렌치드리퍼에 넣어 가라앉힌 옅은색의 뿌연커피를 들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손으로 돌려갈은 커피와 아날로그적 사고가 컴퓨터 자판을 통해 디지털로 입력되는 것에 약간의 이질감을 느낀다.
지난 8년간 끝내지 못한 많은 편지들, 어쩌면 이편지도 그 중에 하나가 될지도 모르지만, 또다시 자판을 두드린다.
그 글들 중 대부분은 지워졌지만, 몇몇 편지는 블로그에 옮기지기도 한다.
이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언젠가는 이 글들의 주인공이 독자가 되어주기를 바랄뿐이다.
그때가 1981년 3월 이었으니,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인연이란 이런 것일까?
시간이 가도, 곁에 없어도, 언제 어디를 가도 마음속에 있는 사람.
머리 속에 남는 사람은 시간이 가면 작아지고 기억은 흐려지지만, 마음 속의 그 사람은 점점더 선명해진다.
한순간의 행복이 평생을 간다던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때처럼 가슴이 뛰는데,
구제불능이라는 소리를 듣던 철들지 않은 30대 중반의 그 모습은 어디로 가고,
거울 속에는 아직도 다듬어지지 않은 중년의 모습이 있다.
시간은 점점 가속도가 붙고,
이제 곧 반세기를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철없던 시절의 구제불능이었던 내가 아닌,
이제 쉰을 바라보는 중년의 내가 마음속의 그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다.
돌아서면 금방이라고 하지만, 8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나는 매일 밤 눈감기 전, 니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너를 행복하게 해달라고, 사랑 받으며 살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이야기 했다.
시간이 가면서 그 또한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 조차도 선택권은 없었고,
3년전 너를 만났을 때, 나는 그것을 한번 더 확인했다.
지난 8년간 그래왔듯이 나는 너를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내가 선택한 내 삶을 살아가듯, 너 역시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너 자신만을 위한 너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아버지께서 걱정하신다며 빨리 들어가야 된다고 할 때, 니가 사랑받고 있음에 감사했고,
외롭지 않게 살고 있는 너에게 감사한다.
나는 너에게 친구가 필요할 때 친구가 될 것이고,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고, 힘이 되도록 노력할테다.
세상에서 잠시 도피하고 싶을 때는 방패가 되어주고,
너의 결정이 무엇이든 진심으로 축복하게 될것이고,
너의 행복을 위해 내가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말기를 바라며,
언젠가 너의 곁에서 내가 그러했듯,
나는 너의 행복만을 바라고 기도할 것이다.
나는 항상 이자리에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지 니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지금 철들지 않은 그 때의 내가 아닌
내인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16년을 살아가는 현재의 내모습이며 내 마음이다.
수정 : 2016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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